여행/2018 미동부 · 캐나다

[D+9] 보스턴

속좁은 바다표범 2023. 4. 5. 01:36

보스턴하면 보스턴 차 사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주입식 교육의 결과다.

미국을 식민 지배하던 영국이 미국 상인의 차 밀무역을 금지시키고 동인도회사에 차 무역 독점권을 부여한다.
이에 반발하는 미국인들이 보스턴항에 정박 중이던 동인도회사의 선박을 습격해 배에 실려있던 차를 모조리 바다로 던져버린 사건. 미국 독립전쟁의 시발점이 된 사건 중 하나이다.

지금 생각하면 창피하지만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보스턴 차 사건을 처음 배울 때 차(茶)를 차(車)로 착각해서 수출용 컨테이너에 있는 자동차를 바다에 빠트리는 것을 상상한 적이 있다. ㅎㅎ


보스턴에 가고자 마음 먹었을 때 책으로 배웠던 것을 눈으로 보고싶다는 생각에 Boston Tea Party Ships & Museum 을 찾아 티켓을 예매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장소 중 하나다.


보스턴에서의 첫 아침을 먹고.



보스턴 티 파티 뮤지엄에 도착.

오른쪽의 붉은 건물부터 왼쪽에 있는 노랑 배까지가 모두 티 파티를 위한 이벤트 장소이다
붉은 건물 입구에 있는, 보스턴 차 사건을 이끈 새뮤얼 애덤스의 동상. 보스턴을 기반으로 하는 유명 맥주 새뮤얼 애덤스는 이 분(?)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예약한 티켓을 찾아서 '미팅하우스'로 들어가 1773년의 보스턴으로 간다.

인디언으로 분하기 위한 깃털과 오늘 밤 티 파티를 위한 역할 카드를 받았다.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게 하려고 인디언 분장을 했다고 한다
나는 존 후튼. 부두 주변에서 일 하는 노 장인의 견습생. 자유의 아들의 일원으로서 오늘 밤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귀에 깃털을 꽂고 거사를 치르기 직전 섀뮤얼 애덤스의 연설을 듣는다


오늘 밤의 성공을 위해 구호를 외치고는 (어떤 구호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음) 이 방을 나가 배로 간다.


당시의 선박을 재현한 배다.
아래의 계단으로 내려가면 선실이 있는데 배 구석 구석을 구경시켜줘서 선원들의 생활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자, 이제는 차 상자를 던져야지.
차 상자 던지기 체험을 하는데 역시 어린아이들이 적극적이다.

이렇게 바다로 차를 던지면
차 상자가 배 옆에 대롱 대롱 매달려있어 다시 끌어올릴 수 있다.ㅎㅎ


화물칸(?)에서 차 상자 끌어올리는 체험을 하는 외국인 아저씨
차를 담아 운송했던 나무 상자

동인도회사를 통해 차 뿐만 아니라 겨울용 섬유, 석탄, 덩어리 설탕, 유리제품 등도 수입되었는데, 레몬/오렌지의 경우 다른 항구에서 35만 개를 수입했다면 이 곳 보스턴에서는 200만개를 수입했다고 한다. (보스턴에서 특히 레몬을 좋아했나..?)

오른쪽 아래 상자에 레몬이 보임. 당시에도 레몬의 상품성을 위해 완충제를 사용했나보다



1773년의 복장을 한 가이드들이 배의 이곳저곳과 박물관도 안내해주면서 그 날 밤에 얼마나 긴급하게 일이 진행되었는지에 대해 재연에 가까운 설명을 해준다. 
이 분들 마치 레크레이션 강사같은 텐션이다.


거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남자였는데 그 때 여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라는 질문을 받았다. 

'뭘 했을까', '여자들에겐 다른 임무가 있었나' 를 생각하는 중에 답을 말해주길,
차 상자를 던지는 건 건장한 남자만 할 수있던거라 여자들은 참여할 수 없었기에 여자들은 불꺼진 어두운 집 안에서 자녀들을 돌보며 남편의 무사귀환을 기도했다고 했다. 
한 밤 중에 집에 불이 켜있으면 범인 색출에 용이할테니.

큰 일을 성공적으로 치르면 보통은 앞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만 기억하지 뒤에서 지원한 조력자들의 노력은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공동의 목표를 위해 각자 자신이 처한 입장에서 최선을 다했음을 짚어주다니 이런게 미국식 사고방식인건가.
나는 미처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라 뭔가 뒷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렉싱턴에서의 무력충돌에 관련된 다큐멘터리 영화 감상을 마지막으로 투어가 끝났다. 
길지 않은 영화였지만 여운이 꽤 길다.


티켓 가격 대비 프로그램이 꽤나 알찬 매우 만족스런 투어였다.





점심 먹을 곳을 찾아 구글 지도를 뒤진다.
평점이 나쁘지않은 곳을 찾아 15분 정도 걸어 도착한 Bostonia Public House.

점심 세트 메뉴로 크램차우더 콤보가 있어서 치킨샌드위치+크램차우더 콤보 세트를 시켰다.

햄버거 비주얼의 샌드위치. 고기가 두꺼워서 퍽퍽해보이고 계란까지 있어 이번 식사는 실패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먹어보니 맛있었다




점심도 먹었는데 이젠 어딜가야하지.
다음 목적지를 정하기위해 가이드북을 볼만한 장소를 물색하다 근처 스타벅스로 들어갔다.

밖이 너무 더워서 아아를 주문했는데 찬 음료를 마시고 땀이 식으니 실내의 에어컨이 춥게 느껴진다. 
더위와 햇빛을 피해 이 곳에서 좀 뭉개려고 했는데 이젠 추워서 나가고 싶어지다니 이 무슨 변덕이란 말인가.

덥긴하지만 에어컨보단 자연 바람이 나을거 같아서 일단 나왔다.



찰스강이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니 거기가서 멍 때려야지. 
서울에선 한강 둔치도 안 가봤는데 지금은 남는게 시간이라 강변 산책도 할 수 있고 여유로워 좋다.




찰스강 쪽으로 가고 있는데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갑작스럽게 소나기가 내린다. 
비를 피할 곳을 찾다 저 멀리 지하철 역이 보이길래 뛰었다. 다행히 출구 쪽에 걸터앉을 곳이 있어서 역사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여기서 사람 구경이나 하며 비가 멈추길 기다려야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방향 쪽 출구라서 그런지 병원 출입증(?)을 목에 건 사람들이 많이 오간다


목적지를 향해 바삐 걷는 사람들을 보니 갑자기 현실이 자각되어 급 우울해지기도 했다.
(졸업은 결정되었지만 진로를 결정하지 못해 모든 선택지를 열어놓은 상태이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면 돈도 벌어야하고 논문도 써야한다. 
두 마리 토끼를 놓치지 않으려고 버둥거릴 생각에 벌써부터 심난하다.)


단 거 먹고 기분전환이나 해야지.
찰스강에서 먹으려고 산 간식 보따리를 여기서 풀었다. 컵케익과 멜론.




먹구름이 몰려가며 비가 멈췄다. 
강가로 다시 가 보자.


엇, 강에서 조류가 올라왔다.
그런데 사람들이 별로 신경을 안쓴다. 
저 조류도 사람을 겁내지 않는것 같고. 신기하다.ㅎㅎ





왼쪽의 둥근 지붕 무대에 사람들이 모이더니 악기 소리가 들린다. 뭔가 행사가 있나보다.


주변 벤치에 앉아 있다가 팜플랫을 받았다.
오케스트라가 공연을 하는 것 같은데, 조금만 더 있음 공연 시간이니 기다렸다 듣고가려고 한다.

팜플랫에 적힌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소속이 병원이거나 대학이길래 호기심에 인터넷을 검색 해봤다.
하버드 의대에서 처음 시작된, 의료 전문가로 구성된 자선봉사 오케스트라란다.
헐?! 의대 공부/병원 생활을 하면서 오케스트라를 한다고?! 이 분들 너무 대단한거 아냐?!

게다가 정기공연 외 여름 야외콘서트는 저 Hatch Shell에서 열리는 딱 한 번이란다.
그걸 내가 들을 수 있는 거다!!
운이 참 좋은 것 같다. 어예!!


공연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사진에 보이는 잔디밭은 관객들로 메워졌다.


스타워즈 OST로 공연을 시작.
아마추어 오케스트라가 저런 소리를 내려면 얼마나 많은 개인/단체 연습이 필요한지 알기에 그들의 열정이 존경스러울 뿐이다.

이후의 곡들은 클래식 곡이었다.
공연은 한 시간이 넘게 이어졌고 해가 지며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듣고 싶었지만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 걱정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올 때는 이곳저곳을 구경하느라 빙 둘러서 왔는데 지도로 확인해보니 퍼블릭 파크만 가로지르면 오래 걸리지 않고 숙소에 갈수있다.

공원을 가로지르는데 사람들이 꽤 있던 초입과 달리 갈수록 인적이 드물다. 
조금만 더 가면 공원 출구인데 초입과 다르게 네온사인도 없고.
어두운 구석에서 누가 튀어나오면 피할 길이 없을 것 같아 무서워서 마구 뛰었다. 
헉헉. 다음부턴 늦게 다니지 말아야지.ㅠㅠ



숙소 바로 옆에 있는 중식당에서 저녁을 포장해서 들어간다.

메뉴가 너무 많아 읽기도 힘들어서 그냥 사진으로 있는 메뉴를 고른건데 소고기와 파가 든 튀긴 전병 쯤 되려나. 
아무 생각 없이 골랐는데 의외로 맛있었다.


아침의 투어부터 저녁의 공연까지.. 예상치 못한 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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