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협업부서에 빌런이 있다.
1.
협업 요청을 하면 일단 거부하는 걸 기조로 삼고, 아예 안되는 것도 아닌데 안되는 이유를 엄청 과장해서 정말 할 수 없는 것처럼 대응을 한다.
나도 여기에 당해봤다. 분명 나랑 협의할 땐 안된다고 해서 포기했는데 나중에 보니 안되는게 아니었던 거다... 쩝..
말빨이 엄청나서 한 번 말려들면 답이 없다.
베테랑 동료들은 그의 공격을 적당히 잘라내며 회의를 진행시키는데 난 아직 내공이 부족해서..
빌런이를 상대하려면 내공이 더 쌓여야한다.
자기의 말이 우리에게 안 먹힌다싶으면 우리의 요청을 다른 부서로 떠 넘기려고 물귀신 작전을 시전하기도 한다. 다른 부서는 가만히 있다 날벼락을 맞았으니 빌런 부서와 다른 부서 간에 논쟁이 일어날 때도 많다.
2.
가장 최근엔 회의를 두 시간이나 했다.
겨우 슬라이드 두 장 짜리 내용인데 어찌나 이런 저런 핑계를 대던지.
하지만 우리는 방어를 잘 했고 해당 아이템에 대해 정리가 되어가던 찰나 물귀신 작전이 시작되었다.
자기네 부서의 다른 사람에게 이번 일을 넘기려는 시도를 하는거다.
가만히 있다 날벼락 맞은 사람이 하는 일을 A라고 하고 빌런의 일을 B라고 하자.
방법은 아래의 두 가지가 있고 우린 2안을 제시했다.
1안: raw data를 A에서 가공해 B로 전달
2안: A에서 B로 raw data를 전달해 B에서 가공
빌런이 하도 난리를 치니 가능한 1안으로 진행하고 싶었는데 검토해 본 결과 진짜로 1안이 불가능해서 2안을 제시한거다.
그런데 빌런이는 1안으로 해보는게 어떠냐며 (우리가 아닌) A쪽 참석자에게 역으로 제안을 한다.
A쪽 참석자가 1안은 진짜 불가능하다고 얘기를 해도 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그렇게 두 시간이 지났다.
가만히 있다 벼락많은 A쪽 사람은 화도 안내고 설명을 하고 있더라. 보고 있던 우리도 짜증이 나던데...
어떻게 같은 부서원에게 그런 억지를 부리는지 빌런이의 사고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만 아니면 돼' 인건가.
3.
이번 회의에는 우리 부서 사람들이 평소보다 많이 참석했다.
대부분 회의와는 관련이 없는 사람들로, 시간 있음 들어오라는 누군가의 말에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왔다가 두 시간 감금을 당한거다.
우리 부서 사람들은 말로만 듣던 빌런의 활약상 (핑계, 말빨, 그리고 같은 부서원에게 억지를 부리는 것 등) 을 직접 보고는 빌런이 정말 독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빌런이는 갱생될 수 있을까.
그나마 빌런이네 이번 부서장이 부서 장악력이 뛰어나 누구의 눈치도 안보던 빌런이가 부서장을 눈치를 본다고 들었다. 눈치를 보는 게 이 정도면 그 동안은 얼마나 막무가내 였을지...
웃기면서도 황당하고 한편으로는 씁쓸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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