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 워싱턴 도착
워싱턴 볼티모어 공항에 도착(05:54) 했다.
인천에서 출발한 이후 얼마나 오랜시간을 깨어있었는지 모르겠다. 비행기에서 틈틈히 졸았다 하더라도 최소 24시간 이상은 깨어있었던 것 같은데.
샌프란시스코 환승 때 추위에 덜덜 떨며 놀러갔다 왔더니 가뜩이나 저질 체력인데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진 것같다.
워싱턴 시내로 가야한다는 긴장감에 정신차리려고 눈을 부릅뜨긴했으나 이미 내 머릿 속은 혼미해져가고 있었다.
공항에서 시내 (유니온스퀘어)로 가기 위해 Amtrak기차를 탔다.
다른 블로그의 포스팅으로 봤던 것보다 낡았고 사람도 많았다.
여느 도시의 출근 길 같이 누군가는 졸고 누군가는 신문을 보고 누군가는 노트북을 켜고 일을 한다.
근처 위성도시(?)에서 워싱턴으로 출근하는 사람들 같은데 너무나 조용한 기차 분위기에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이른 아침 출근길이 너무 현실적이라 마치 서울에 있는 느낌이다.
Union Station에서 내려서 환승 및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서두르는 것도 서울 지하철역 같다. 하긴 워싱턴도 사람 사는 곳인데 다 똑같지 싶다.

Union Station에서 예약한 호스텔로 가기위해 다시 전철을 탄다.
출근 시간대라 피크 요금까지 내고 탔는데 전철이 텅텅 비었다.
아까 봤던 출근하던 수 많은 사람들은 어느 노선을 탄걸까.
호스텔에 도착, 억지로 부여잡고 있던 정신이 확 풀린다.
일단 좀 자야할 것같아 잠을 청했다.
한 숨 자고 일어나서 침대에서 빈둥거리는데 맞은 편 침대의 외국인도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전화도 하고 핸드폰으로 영상도 보고 책도 본다.
여행 중에 책을 들고 다니며 읽는 사람들 보면 왠지 멋있어 보여 나도 챙기기는 하지만 남들 가는 관광지를 모두 다니다보면 피곤해서 책 볼 틈이 없는 것 같다. 이번에도 얇은 책 한 권을 갖고 갔지만 한 장도 읽지 않았다.ㅎㅎ
무슨 책을 읽나 싶어 살짝 곁눈질해서 보니 'You can relax and overcome stress'라는 제목이다.
아이고, 저 언니도 스트레스 많이 받나보다. 나도 이런 저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한 상태로 떠났는데...
괜히 혼자 내적 친밀감을 느끼며 침대 위에서 한참을 빈둥거렸다.
슬슬 정신도 들고 배도 고파서 바깥 구경을 하려고 숙소를 나선다.
숙소 주변에 capital bike share가 있어서 3일 이용권을 17달러에 구입, 자전거를 타고 근처에 있는 월마트로 간다.
메트로 1일권이 14.5달러이고 3일 이상의 short trip pass도 36달러인데 앞으로 가야할 곳들이 메트로에서 내려서도 한 참을 걸어야 하니 자전거를 타는게 덜 힘들 것 같았다.
자전거도 결국 내 동력으로 움직여야 하건만 걷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조삼모사같은 생각이다.ㅎㅎ
자다 깨서 월마트에 가려고 했던 것은 손목 시계 때문이었다.
평소에 시계를 차지 않는데 여행 중에 혹시 필요할까봐 면세점에서 손목 시계를 하나 구입했다.
시계 줄을 조정하지 않고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시계 줄이 메탈 스트랩 형태인 것으로 골랐다.
손목 두께에 맞게 줄을 고정하도록 스트랩에 일정 간격으로 홈이 파여 있어 홈에 맞게 잠금 장치를 고정시켜 시계를 잠그는 방식인데, 딸칵, 경쾌한 소리와 함께 고정되고는 열리지 않는 거다.
홈에 맞게 고정된 것이 아니라 홈과 홈 사이에 고정되는 바람에 손으로는 잠금장치가 풀리지 않았다. 결국엔 프론트로부터 일자 드라이버를 빌려서 일자 부분을 스트랩과 잠금 장치 사이에 넣어 지렛대 삼아 잠금 장치를 열었다.
익숙치 않은 시계가 왠지 여행 내내 골칫거리가 될 것 같은 생각에 월마트에서 짧고 뚱뚱한 휴대용 드라이버 세트 (일자+십자)를 구입했다.
(일자 드라이버를 가방에 넣고 다니다보니 가방을 검색대에 통과시킬 때마다 가방 검사를 해서 다른 의미로 골치이긴 했다.)

저녁은 월마트 바로 옆의 District Rico라는 식당에서 해결했다.
뭔가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되어 정식 레스토랑은 부담스러운데 유리 너머 안 쪽을 들여다봤더니 panda express같이 음식을 고를 수 있게 되어있길래 들어갔다.
치킨이 주 요리고 사이드를 고르는 것인데, 1/2 치킨에 더운 야채와 볶음밥을 골랐다.
식당 안에 테이블이 있었지만 다들 to go만 하고 테이블에서 먹지 않는 분위기라 뭔가 뻘쭘해서 나도 따라 to go 했는데 내 바로 앞 사람이 테이블에 포장한 음식을 펴는거다. 나도 따라 폈다.
잘 모를 땐 무조건 앞 사람 따라하기다.ㅎㅎ
아.. 지금 생각해도 다시 먹고싶을 정도로 치킨이 부드럽고 담백하니 맛있었다.
머스타스 소스와 고추 소스를 줬는데 찍어 먹어도 맛있었고 그냥 먹어도 맛있었다.
밥과 더운 야채도 얼마나 반갑던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맛있게 먹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페루식 치킨이란다.
워싱턴에 또 갈 일이 있다면 다시 한 번 들러보고 싶은 집이다.
포장한 음식이라 한 쪽으로 쏠려서 사진에는 양이 적어보이는데 절대 적지 않았다.

오늘은 맛 보기로 주변 동네를 살피고 사람 구경 정도만 했다.
비행기를 오래 탄 것도 있지만 출국 전 날까지 바쁘다보니 특별히 하는 것도 없는데 피곤하더라.
동시에 이렇게 아무 것도 안하고 한가하게 있다는게 실감나지 않아 어색하기도 했다.ㅎㅎ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여행 시작이다.
하루 하나씩 메인으로 할 것만 정하고 나머지는 무계획. 쉬엄쉬엄 느긋하게 다녀야지.
벌써부터 설레인다.